패션2013.02.09 17:18
최근 몇 년간 패션 롤모델이자 아이콘 중에 유난히 눈에 자주 띄는 사람 중 하나가 마이클 케인이다. 이런 게 보다 어필하고 있는 시대라는 거겠지.

 
특히나 명징한 마이 웨이를 추구하는 이들의 경우 잡지 따라하기나 패션 아이콘 류의 셀러브리티 따라하기를 패션이 아니라는 이유로 망설이는 사람들도 사실 꽤 있다. 하지만 여하튼 이쪽 바닥은(사실 어느 바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타고난 미라클한 재능이 없거나 모든 실패를 용납할 수 있는 자금이 없다면 따라하기와 자기에 맞게 조절하기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아무 것도 없는 맨 바닥에 의지만 지니고 들고 뛰어 봤자 실질적으로는 코스프레보다 더 나은 걸 해낼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고, 그에 근접한 것도 실현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더구나 그저 소문이나 자신의 감만 믿고 실행한 실험과 응용은 일반적으로 점점 더 안 좋은 지향점을 향하게 되기 일쑤다.

물론 이런 건 패션, 특히 스타일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이야기이고 이런 기본적인 지향점과 다른 삶을 살기로 - 나는 아무 상관도 하지 않으련다 - 한다면야 이런 건 관계없는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여하튼 마이클 케인의 경우엔 예전 제임스 본드의 정통 세빌로우 테일러링 타입은 아니다(예전에 말했듯 최근 제임스 본드는 쇼핑 장소를 세빌로우에서 본드 스트리트의 명품가로 바꿨기 때문에 약간 다르다). 그보다는 1960년대 남성 스타일링 급 변천기 영국의 테일러 Doug Hayward 계열이라고 할 수 있다.

웨스트 런던 켄싱턴의 부유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난(아버지는 BBC의 보일러 청소원이었다) 덕 헤이워드는 테일링을 배우고 혼자 일을 시작했지만 카크니 액센트(링크) 탓에 세빌로우와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테일러드 샵에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풀햄으로 가 쇼비즈 특화된 테일러를 하고 있던 Dimitrio Major로 간다. 여기서 서비스 멘탈을 발전시키고 미니 컨츄리맨을 타고 고객이 원하는 어디든 가서 일을 하고 그랬다고 한다. 

뭐 여차저차 과정을 고치고 일을 매우 잘 했기 때문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이클 케인, 스티브 맥퀸 같은 고객들을 가지게 되고 그의 사무실은 북적북적 젠틀맨스 클럽처럼 되고 등등등.

마이클 케인의 1966년 영화 Alfie가 덕 헤이워드로 부터 받은 직접적인 영향으로 스타일링했다고 알려져 있고, 1969년 이탈리안 잡에서는 직접 마이클 케인의 수트를 만들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마이클 케인 스타일링 이야기들은 링크로. 디테일(링크), 에스콰이어(링크), 셀렉티즘(링크), Clothes of Film 블로그(링크) 등이 참조할 만 하다. 



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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