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2012.06.19 23:56
며칠 전에 문득 '발렌티노'가 생각나서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그가 은퇴할 때인 2008년의 오뜨 꾸뛰르까지 뒤적거렸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발렌티노의 옷을 아주 좋아하고 선호하는 디자이너라고 하긴 좀 그렇다. 그래도 발렌티노 레드와 요란하되 아주 넘쳐 버리지는 않은 색감, 그리고 어떤 드라마틱함 같은 걸 좋아한다.

사실 발렌티노하면 시큰둥한 옛날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며 별 관심이 없었는데 2000년 초반인가 남성복 여름 광고 (열심히 뒤졌는데 못 찾았다, 하여간 잉여적이고, 한량같은, 나른한 광고다)를 보고 언듯 아, 얘네 뭔가 하는 생각을 했고 이후에 점점 찾아보게 되었다. 보통의 '화려한' 옷들과는 다르다. 뭔가 있다는 느낌같은...

여하튼 종종 발렌티노 매장 앞에 멍하니 서서 구경을 한다. 이렇게 구경하는 거의 유일한 디자이너다.

사실 무엇보다 발렌티노 가라바니라는 이 할아버지를 좀 좋아한다. 자주 능글맞고, 거기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 순식간에 바뀌는 감정의 기폭, 드라마틱한 것에 대한 지치지 않는 애정,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누구보다 좋아하며 신경쓰는 모습이 좋다. 너무 나가버린 라거펠트나, 너무 응축된 아르마니 사이의 어느 지점인가에 위치해 있다.  

어쨌든 생각난 김에 발렌티노가 은퇴할 즈음 마지막 오뜨 꾸뛰르와 뮤지엄 제작까지를 다룬 다큐멘터리 The Last Emperor를 봤다. 확실히 황제같은 느낌의 디자이너들이 군림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 남은 건 라거펠트와 아르마니 정도? 뭐 내용을 자세히 정리할 수는 없고 좀 떠들고 싶은 장면들에 대해서만.

'

이 아저씨는 지안카를로 지아메티라고 Valentino SpA의 경영자이자 애인이다. 1960년에 만나 그때부터 쭉 같이 했으니 이제 애인이라는 명칭은 좀 이상하고 파트너, 콜래보레이션, 생의 동반자 뭐 그런 50년이 넘은 어떤 것. 여튼 이 둘은 매번 싸우고, 다투고, 삐지고, 울고, 화해한다. 화면의 저 팔찌는 한껏 다툰 다음날 발렌티노가 무심한 듯 건네준 선물이다. 화면은 발렌티노가 훈장을 받고 연설을 하면서 지안카를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발렌티노도 울고 지안카를로도 울고.

 



여튼 이 할아버지 툭하면 운다.

 



이건 발렌티노 박물관 개장하고 마지막 패션쇼를 하기 전. 발렌티노(왼쪽)가 라거펠트의 손을 붙잡고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준다.

 


잘 안보이는데 톰 포드, 도나텔라 베르사체, 조르지오 아르마니.

쇼가 끝나고 나서 돌아가며 인사하고 사진을 찍는데 아르마니와 꽤 오랫동안 껴안는다. 무척 감동적이다. 뭐랄까, 이제 저렇게 살 수 있는 디자이너들은 아마 다시는 없을거다. 저 당시에 아르마니가 후계자를 찾는다니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말이 요즘은 쏙 들어갔다. 마음에 차는 사람이 없는건지.
 



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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