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2012.03.14 18:49

잡지를 뒤적거려봐야 보도 자료를 옮겼거나 찬사나 권유 밖에 없는 기분이 드는 경우가 많겠지만 물론 패션에도 크리틱이 있다. 수지 멘크스나 에이미 스핀들러, 케이시 호린처럼 꽤 유명한 사람들도 있다. 주로 IHT나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등에서 활동한다.

 

패션쇼에 대한 크리틱이 기존 언론 창구(패션 잡지)를 통해 가능한가, 또는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특히 우리의 경우에 어떠냐 하는 건 이야기가 많이 복잡해지니 일단 나중 일로 넘긴다.

 

살짝 붙이자면 제 3자 입장에서 바라 보는 이 업계는 조금 희한하다. 일단 잡지의 가장 큰 역할은 광고다. 광고라는 말이 너무 부정적으로 들린다면 소식 전달과 권유 및 제안 정도로 하자. 옷 만드는 곳과 잡지 만드는 곳이 거의 한 팀이다. 물론 영화 만드는 곳과 잡지 만드는 곳도 크게 말하자면 한 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시피 그 쪽과는 양상히 상당히 다르게 전개된다. 이유는 현 상황에서 패션 크리틱 잡지가 존재하기도 무척 어렵거니와, 무엇보다 그런 걸 읽을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어쨌든 여기서는 그 이후의 일(패션 크리틱이 a priori하게 있는 이후)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굳이 '크리틱'이라는 단어를 안쓰더라도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호/불호가 존재하게 된다. 와, 최고네 뭐 이러면 너도 좋고 나도 좋으니 상관없겠지만 문제는 부정적인 경우다.

 

패션쇼라는 건 굉장히 live한 이벤트다. 즉 직접 보는 것과 비디오나 다른 것으로 보는 것 차이의 격차가 좀 있다. 그리고 프라이빗하다. 서울패션위크의 경우 표를 팔거나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즘도 파는 지는 모르겠다) 파리나 밀라노나 어디든 초대제다. 미리 프레스 신청을 하고, 인비테이션이 날아와야 들어간다.

 

 

(파리 컬렉션 Chloe의 프론트 로)

 

예를 들어 영화의 경우 평소에 모 감독의 영화에 대해 매우 네거티브한 평론가라도 정 안되면 표 구입해 들어가서 보면 된다. 음악이야 뭐 그 쪽에서 좋아하든 말든 CD 구해다 들으면 된다. 음식 잡지나 블로그 쪽에서 변장하고 들어가 뭐 먹어봤다 하는 이야기도 많이 본다. 하지만 패션 쪽은 업계 쪽에서 쟤 뭐냐, 해버리면 아예 못들어간다.

 

 

 

얼마 전에 에디터 Robin Givhan이 더 데일리 비스트에 라거펠트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요약하자면 라거펠트의 샤넬은 훌륭하지만, 다른 것들은 별로다, 이 할아버지 과부하 걸린 거 아니냐하는 내용이다.

 

Is Chanel Designer Karl Lagerfeld Spread Too Thin? by Robin Givhan

http://www.thedailybeast.com/newsweek/2012/01/29/is-chanel-designer-karl-lagerfeld-spread-too-thin.html

 

Robin Givhan은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를 시작으로 워싱턴 포스트에서 한참 일했고, 2010년인가 그만 둔 이후 요즘에는 뉴스위크나 더 데일리 비스트에 패션 컬럼 같은 걸 쓰고 있다. 이 분은 얼마 전에 패션 블로거들이 디자이너들에 대해 너무 열광하든지 좋은 이야기만 쓰는 경향이 있다고 크리틱과 디자이너들 사이의 발란스를 유지하라는 일갈을 가하신 적이 있다.

 

라거펠트는 이 기사에 대해서 Robin Givhan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에요 뭐 이런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워싱턴 포스트 시절에 패션 크리틱으로 퓰리처 상까지 받은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으면(물론 모를 수도 있겠지만) 라거펠트가 자기 신에 좀 무관심한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 여튼 결론적으로 그는 올해 샤넬의 파리 컬렉션에 가지 못했다.

 

Robin Givhan은 이에 대해 아무리 라이브 스트리밍 비디오로 보더라도 패션쇼는 직접 보는 경험과는 다르다며 "패션 크리틱에는 디자이너 하우스의 협조가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컬렉션의 저널리스트 출입 제한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 제기들이 한창 나오고 있다.

 

 

 

이와 약간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적 있는 사람이 위에서 잠깐 말한 Cathy Horyn이다. 에이미 스핀들러(2003년에 은퇴하고 2004년에 돌아가셨다)에 이어 뉴욕 타임즈의 패션 크리틱 자리를 물려받은 분이다. 뉴욕 타임즈의 패션 & 스타일에 있는 On the Runway 같은 블로그 꽤 재미있어서 열심히 본다. 이분은 매우 신랄한 비평으로 유명한데, 덕분에 꽤 많은 패션쇼에서 출입을 금지당했던 이력이 있다.

 

이 분은 2008년에 아르마니 패션쇼를 밴 당했었는데 그러면 비디오랑 사진으로 보면 되지, 지금은 디지털 에이지라고~ 뭐 이러면서 재밌어 했었다. 이거야 자주 밴 당해본 사람의 여유라고나 할까.

 

 

 

Cathy Horyn 같은 분들도 세상엔 있겠지만, 비평이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거다라고 주장하지 않을 거라면 저널리스트들의 크리틱을 위해 디자이너 하우스의 협조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들어가서 봐야지 뭐라도 쓰고, 대화도 가능한 법이다. Suzy Menkes 처럼 패션쇼장에서 받은 선물들을 일일이 돌려보내는 정도의 엄격함은 저널리스트 모두가 가질 수 없을 지 몰라도(스타크래프트 타고 싶어 연예인 된다는 사람이 있듯이, 그런 대접이 받고 싶어 에디터 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널 분야에도 나름 열심히 독자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그것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들 있을 것이다.

 

뭐 세상 만사 서로 각자의 일을 하는 거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런 거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면 디자이너 자신의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에 영향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하여간 터무니 없는 크리틱은 웃어 넘기고, 훌륭한 크리틱이 제시하는 걸 가끔 포용하며 마주 대할 수 있는 게 산업계 안에 종사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넘어야 할 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패션 신에서 50년이 넘게 일하신 분이 들어본 적도 없어요 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좀 꼴 사나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안나 윈투어와 태비 게빈슨. 11살 패션 블로거로 유명했던 태비도 이제 15살이다. 내 딸도, 내 엄마도 아니므로 괜한 걱정 드립은 삼가도록 하겠다)

 

패션신에 있어 대중-저널리스트-패션쇼 사이에는 간격이 하나가 더 있다. 저널리스트들은 일반적인 경우에 패션쇼를 경험하게 되지만, 일반 대중(=소비자)들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한 비디오-포토와 그것을 보고 온 저널리스트들의 글이 맥시멈하다.

 

다른 건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가방이나 사세요라는 이 바닥의 구조에 불만을 품고 에디터나 블로거가 된 사람도 꽤 많을 거 같다. 패션 관련된 포럼들을 보면 패션쇼에 유난히 냉소적인 사람들을 꽤 볼 수 있다. 아무튼 일반 소비자는 컬렉션 화보나 보다가 나중에 그 패션쇼의 결과물로서 나오는 잔여물들을(패턴 디자이너의 손이 덧붙어 양산품화 되고 음악과 모델과 조명이 사라진) 매장에서 확인하는 정도다. 과연 여기엔 어떤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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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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