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2017.06.16 12:17

이건 상당히 스케일이 큰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요약만 한다. 우선 오래간 만에 이 생각을 하게 된 동기. 물론 생각은 계속 하지만 그걸 가지고 뭘 쓴다 이런 일은 최근에는 거의 없으므로.


1) 조나단 앤더슨의 패션쇼(링크).


2) 카니에 웨스트 - 케이시 힐에 대한 이야기(링크).


3) 걸 그룹 구경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물론 의상이다. 보이 그룹이 팬덤 중심이고 그러므로 일상과 괴리된 유니크한 의상으로 팬덤과 연예인을 분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걸 그룹은 대중성이 중심이고 그러므로 무대 의상으로의 특수성에 일상성이 결합되어 있다. 게다가 일단 옷이라는 거 자체가 여성복 쪽이 바운더리가 훨씬 넓다 보니까 선택의 폭도 넓다. 


이런 경향에 대해 조만간 어딘가 나올 모 글에 대강 정리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게 좀 묻혀 있는 바람에 시간이 좀 지난 이야기가 되버려서... 그 이야기는 글이 나온 다음에 다시 하고. 어쨌든 이런 경향은 최근 변화하고 있는데 아이오아이, 트와이스 이후 걸 그룹 팬덤이 커지고 있고 이게 다른 팬덤들도 저 정도는 해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고 그러므로 중소규모라도 콘서트를 여는 걸 그룹이 늘어나고 있다. 이 말은 조만간 굳이 대중성에 기댈 필요가 없이(즉 TV에서 이상한 예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생존 및 번영이 가능한 걸 그룹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고 그게 의상의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높다는 이야기다.


여튼 콘셉트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의상을 만드는 혹은 채택하는 일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흥미로운 데가 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춤과 노래에 전념하느라 후천적으로 갈고 닦은 패션 센스를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인간 - 패션의 환경 - 의상 등등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사진은 본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누디 진의 리사이클드 데님 러그.



4) VAN의 이시즈 겐스케는 "스타일"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링크). 하지만 그가 말한 스타일이란 물론 그의 말대로 자신의 삶이 "반영"되어 목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자신을 표현함 - 이 점에서 3)의 의상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떤 것을 이야기 하지만 동시에 그 어떤 것을 표현하는 레퍼런스가 상당히 빤하기 때문에(세상에 웰 메이킹 프로덕트가 어디에 얼마나 있겠나) 구속적이고 교조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스타일"이라는 이름의 패션 트렌드가 만들어져 버린다. 게다가 삶의 "반영"이 꼭 스타일링의 목적은 아니다. 이건 좀 더 넓게 써먹을 수 있다.


5) 예컨대 이런 도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옷을 좋아함 - 잘 챙겨 입음

옷을 좋아함 - 대충 입음

옷을 좋아하지 않음 - 잘 챙겨 입음

옷을 좋아하지 않음 - 대충 입음


즉 옷을 좋아하더라도 대충 입는 걸로 뭘 해보려는(시그널 보내, 시그널 보내) 방법도 있고, 옷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잘 챙겨 입는 경우(3)의 예를 보자)도 있다. 조금 더 넓히면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삶을 좋아함 - 잘 챙겨 입음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삶을 좋아함 - 대충 입음


이런 경우도 나올 수 있다. 이 넷이 만들어 내는 사람과 옷의 조합은 각자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고 또한 거기에서 나오는 파편이 있다. 이 모두가 생각하기 나름으로 재미도 줄 수 있고 삶을 더 충실하게 만들 수도 있다.


6) 이런 상태에서 옷과 패션의 즐거움을 더하려면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즉 의지가 조금은 반영되어야 하는데(예컨대 옷을 좋아함 - 대충 입음을 위해서는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의 의지가 필요하다) 남의 말을 들어 보고 뭔가 찾아보고 하는 비용이 필요하다. 당연하지만 제 좋은 것만 계속 입는 건 가장 좋은 옷을 입는 방법이자 동시에 형편없는 패션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동력을 위한 모티베이션이 필요하다. 예컨대 남성복 유저의 경우,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1)에서 말한 패션쇼 같은 게 그런 일을 해 줄 수 있다.



7) 이런 건 외부 요인을 찾는 건데... 꼼 데 가르송의 레이 카와쿠보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2013년인가... 무슨 잡지에 실린 건데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미술관과 박물관에 가고, 거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유심히 살펴보고 하는 것들은 유니크한 것, 나만의 것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건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안에서 나오는 것... 뭐 이런 이야기였다.


물론 남의 것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건 자신의 시행착오 비용만 늘리게 된다. 뭔가 애써 생각해 봤자 거의 대부분 누가 한 거고 몇 백 년 전이나 아니면 그나마 다행이다. 패션 같은 눈에 보이는 커머셜한 영역은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남의 이야기를 너무 열심히 듣고 보면 4)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결국은 뭐 마치 인생처럼 많이 듣고 보고 스루하고 버리고 그런 작업의 연속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옷에 한정하자면 이런 노력과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대부분은 "옷을 많이 좋아하지 않음 - 잘 입음"이라는 모순된 목표를 비용을 쓰지 않고 가지고자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8) 결국 퍼스널 스타일이란 이런 생각 등등을 해보고 잊어버린 다음 유니클로 매대에 놓인 옷을 사는 것으로 만들어 진다... 는 건 너무했고 자신을 좀 더 파악하고 들여다 보는 작업의 일환이 될 수 밖에 없다. 뭘 하려는 건가, 뭘 좋아하는가, 뭘 해봤고 뭘 해보지 않았는가가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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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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