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13 15:07

주트 슈트(Zoot Suit) 착장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하이 웨이스트, 와이드한 엉덩이 허벅지 - 타이트한 커프의 테이퍼드 팬츠(페기드 팬츠라고 한다), 와이드 라펠과 와이드 숄더 패드가 상당히 긴 편의 재킷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30년대에 처음 생겨났고 1940년대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시대 상황을 보자면 당시는 전시 상황이었고 남성복은 군대에서 흘러나온 제복 혹은 전시 물자 규제의 영향하에 있는 전시 패션 정도 밖에 없는 상황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패션이다. 이건 40년대 후반 영국에서 나타난 테디 보이(링크)에 꽤나 영향을 미친 조류로 알려져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면 주트 슈트는 할렘, 시카고, 디트로이트 등 흑인 문화권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1940년대 들어 재즈 뮤지션들이 본격적으로 입기 시작하면서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 말콤 X도 당시 이런 식으로 입고 다녔는데 여튼 이후 흑인 뿐만 아니라 멕시코 계열, 필리핀 계열 그리고 이탈리아 계열 등 미국 내 이민자 문화권을 중심으로 많이들 입게 된다. 


하지만 이런 옷은 대부분 블랙 마켓에 새어 나온 소재를 이용해 만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한창 전쟁으로 절약 - 애국이 강조되던 시기 이 사치스러운 의류에 대한 일반의 반감이 상당히 컸다. 그러다가 1943년 남부 캘리포니아에 주둔하고 있던 주둔하고 있던 부대의 백인 병사들과 LA의 멕시칸 계열 젊은이들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이 사건은 조금 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1930년대 대공황이 발생했을 때 미국은 50만~2백만으로 추정되는 멕시코 계열 이민자들을 멕시코로 추방했고 거기에는 120만 가량의 미국 시민도 포함되어 있었다(링크). 어쨌든 그러고도 20세기 초반부터 일을 찾아 온 멕시코 이민자들, 스페인과의 전쟁 떄 넘어온 사람들 등등 해서 1930년대 말 대략 300만명 정도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살고 있었다.


그 중에 랄로 구에레로라는 뮤지션이 있었는데 이 분을 중심으로 멕시코 계열 젊은이들이 주트 슈트를 입기 시작했다. 1940년대 들어 멕시코 계열의 갱과 관련된 여러 사건들 때문에 이 집단과 기존 백인 집단과 사이에 균열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는데 1942년 슬리피 라군 머더(링크)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호세 디아즈라는 19세 남성이 사망했고 9명이 체포되고 징역형을 선고 받는다.


이 사건 이후 멕시코 계열 젊은이들이 1941년 진주만 폭격 이후 참전한 미국의 단합을 방해한다는 믿음 아래 캘리포니아 주변에서 백인 군인 병사들과 충돌 사건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큰 사건 중 하나가 1943년 5월의 주트 슈트 폭동이다. 몇 건의 전초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백인 병사들은 주트 슈트를 입은 멕시코 계열 젊은이들을 폭행하고 슈트를 벗겨 태워버렸다. 


그러다가 1943년 6월의 어느 날 수천 명의 백인 병사들과 시민들이 모여 메인 스트리트를 행진하며 술집, 상영중인 극장 등을 털며 보이는 멕시코 계열 젊은이들을 마구 폭행했다. 더불어 필리핀 계열이나 흑인들도 소수 폭행을 당했다. 경찰은 행진 뿐만 아니라 폭행이 있어도 체포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며칠 간 500여명의 라티노들을 폭행 혹은 방랑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또한 지역 신문들은 이런 행위를 "Cleansing Effect"라며 찬양했다. 


폭력 행위가 소강 상태에 들어갈 무렵 이런 행동은 전국적인 비난을 맞게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 경제가 멕시코 계열 노동자에게 기대고 있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는 사실이었다. 멕시코 정부의 공식적인 항의가 있었고 조사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의견 충돌은 여전해서 이후 당시 영부인이었던 일리너 루즈벨트가 이건 멕시칸 젊은이의 문제가 아니라 뿌리 깊은 인종주의 때문이라고 컬럼을 쓰기도 했고 이에 대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일리너 루즈벨트를 단합을 해체는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미국 내 이민자와 백인 집단 과의 반목을 획책하기 위해 나치가 개입했다는(백인 계열에 자금을 댔다는 주장)는 조사도 행해진다. 증거는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여튼 일제는 이 사건을 미국 정부가 나쁜 놈이라는 주장을 선전하는 데 상당히 이용해 먹었다.


이 사건은 오래전 일이고 많은 대중 문화 속에 들어가 있는 유명한 사건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새삼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딱히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도 없는 거 같다.




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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